soleus 2022. 5. 21. 14:29
卽於其日, 修改封築, 以新墓道, 設祭而告其由, 事旣已. 仍以所齎餘錢. 設宗會于傍近山寺. 坦基(字士安, 生員) 亦自溫陽, 聞而來, 幷少長幾二十餘人. 感丘原之重新, 敍親懿之至樂.  經宿乃罷. 卽吾宗之一大幸也.  仍念傾年, 承宣(諱夏謙, 字受甫)公之爲慶州府伯也. 乃於杞溪縣始祖墓改築, 如禮立石以表.  今此兩位上下之分辨改封. 實前所未遑之擧也.  其於追遠報本之道, 庶幾無憾耶. 謹誌始末如右.
그날로 즉시 봉분을 쌓아 개수하고 묘도를 새로 내고서  제수를 진설하여 그 연유를 고하므로써, 이윽고 개수 사업은  마치게 되었다. 이에 사용하고 남은 돈으로 근방의 산사(山寺)에 종친회를 설치하였다.  그때에 마침 탄기(자  사안, 생원)도 온양으로부터 올라왔다. 일가 20여인이 모여서 구원(丘原)을 새롭게 단장하게 된 쾌거에  모두들 감격하면서  친족으로서 지극한 정의를 나누며 밤을 지내고 나서 파하였다.  이것이말로  우리 종중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날을 돌이켜보건대,  승지공(휘 하겸, 자 수보)이 경주부윤이 되어 기계현의 시조 묘소를 개축 할 때 의례를 갖추어 비석을 세워서 선조 묘소임을 밝혔다(시조묘소도 상하분이다).  이번에는  안성 선조 묘소 개수 사업에서는 판도판서공과 판사재감사공의 묘소도 양위분이 상하분으로  반듯하게 개수하였다.  실로 이전에 미처 겨를을 내지 못하였으나, 이제야 조상의 은덕을 추모하여 제향을 올리고, 자신이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을수 있는 도리에 거의 가까울 것인가!     
삼가 그 시말(始末)을 이상과 같이 기록한다.
 

신미년(1691年)후손 세기(世基) 삼가쓰다